발전소는 다 지었는데 전기를 못 보내는 일이 왜 생기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발전 설비와 송전망의 건설 속도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전소는 3~5년이면 올라가지만 송전망은 평균 13년이 걸립니다.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은 2038년까지 송·변전설비에 72조 8,000억 원을 투입하는 구상을 담았지만 현장에서는 주요 송전선로 31곳 가운데 26곳이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준공일이 밀렸습니다.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전력망은 82개월 늦어졌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수도권에 몰리는 동안 전력은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묶여 있습니다.

목차

## 접속 대기 통보서를 받아 든 사업자

산업 현장 조사에서 만난 중견 태양광 개발사의 사례입니다. 전남 지역에 발전 설비를 다 올려놓고 준공 검사까지 마쳤는데 전기를 팔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유는 변전소였습니다. 그 지역 변전소의 접속 가능 용량이 이미 차서 추가 설비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사업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셋뿐이었습니다. 변전소 증설을 기다리거나 더 먼 변전소까지 자기 비용으로 선로를 끌고 가거나 사업을 접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몇 년 단위이고 두 번째는 사업 수익성을 뒤집는 금액입니다. 금융 약정은 준공 시점을 기준으로 짜여 있었고 발전 수익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이자는 그대로 나갔습니다.

이 구조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에너지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사업자도 같은 벽을 만납니다.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을 올려도 수백 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끌어올 선로가 없으면 가동할 수 없습니다. 발전과 수요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그 사이를 잇는 선로는 느리게 움직입니다.

## 전력망 투자는 무엇으로 구성되나요

전력망은 크게 송전과 배전으로 나뉩니다. 송전은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 고압으로 멀리 보내는 구간이고 배전은 변전소에서 소비자까지 전압을 낮춰 나르는 구간입니다. 산업 입지와 직접 부딪히는 쟁점은 대부분 송전 쪽에 있습니다.

구성내용주된 제약
송전선로345kV·765kV 가공선로, 지중 케이블경과지 선정, 주민 수용성, 보상
변전소전압 변환과 계통 연결 지점부지 확보, 접속 용량 포화
HVDC장거리 대용량 직류 송전기술·공급망, 변환설비 비용
배전망저압 공급과 분산자원 수용분산전원 역송, 설비 노후
계통 운영수요·공급 실시간 균형변동성 자원 증가, 예측 정확도

지중화는 주민 반대를 줄이는 대안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비용이 가공선로의 여러 배로 올라가고 고장 복구 시간도 길어집니다. 모든 구간을 지중으로 깔면 요금 인상 압력이 커집니다. 어느 구간을 지중으로 할지, 그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가 실제 협상의 핵심입니다.

## 왜 13년이 걸리나요

단계별로 시간이 쌓입니다. 계획 수립과 예비타당성 검토, 경과지 선정, 전원개발실시계획 승인, 토지 보상과 지장물 이설, 공사, 시운전 순입니다. 이 가운데 공사 기간 자체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가장 오래 걸리는 구간은 경과지 선정과 보상입니다.

주민 반대의 이유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재산 가치 하락, 건강 우려, 경관 훼손에 "왜 우리 지역이 다른 지역에 보낼 전기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형평성 문제가 섞여 있습니다. 전기를 쓰는 곳과 전기가 지나가는 곳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갈등이 나옵니다. 보상금을 올리는 방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해안 구간이 대표적입니다. 동부 7개와 서부 4개 구간의 전원개발 승인을 마치고 준공 목표를 잡았지만 전체 일정은 애초 계획보다 82개월 밀렸습니다. 7년에 가까운 지연입니다. 그 사이 동해안에 들어선 발전 설비는 출력을 제한받았습니다. 지어 놓은 발전소를 다 돌리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그 비용은 결국 요금과 세금으로 흘러갑니다.

## 계통 수용력이 한계라는 말의 의미

계통 수용력은 지금 전력망이 추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전 설비의 용량입니다. 이 숫자가 바닥이면 새 발전소를 지어도 연결할 자리가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송전망 확충 속도를 앞질러 생긴 상황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현상이 나옵니다. 하나는 접속 대기입니다. 허가는 받았지만 연결을 기다리는 설비가 줄을 섭니다. 다른 하나는 출력 제한입니다. 이미 연결된 설비라도 선로 용량을 넘기면 발전을 멈추게 합니다. 제주와 호남 일부 지역에서 반복해 보고되는 문제입니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바람이 불고 햇빛이 좋은 날에 오히려 수익을 못 내는 상황이 됩니다.

대응은 세 방향으로 갈립니다. 선로를 늘리는 방법, 저장장치로 시간을 옮기는 방법, 수요를 전력이 남는 지역으로 옮기는 방법입니다. 선로 확충이 느린 동안 저장장치의 역할이 커졌고 중앙계약시장 입찰 같은 제도가 그 투자를 끌어오려는 장치입니다. 수요 분산은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 유도 정책이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셋 가운데 어느 하나로 해결되지 않고 조합이 필요합니다.

## 다른 나라도 같은 문제를 겪나요

같은 병목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됩니다. 미국에서는 계통 접속을 기다리는 발전·저장 설비 용량이 현재 가동 중인 전체 발전 설비 규모에 맞먹는 수준까지 쌓였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유럽에서는 해상풍력 단지를 다 지어 놓고 육상 연계선이 늦어 가동을 미룬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빨라진 나라마다 공통으로 겪는 과정입니다.

대응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영국은 접속 대기 줄을 "선착순"에서 "준비된 사업 우선"으로 바꿨습니다. 자금 조달과 인허가가 실제로 진척된 사업을 앞으로 당기는 방식입니다. 미국은 여러 사업을 묶어 한꺼번에 계통 영향을 검토하는 절차로 전환했습니다. 개별 검토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중복 작업을 줄이려는 시도입니다. 유럽은 송전망을 국가 간 연계로 넓혀 한 나라의 병목을 이웃 나라의 여유로 완화합니다.

국내에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조건도 있습니다. 반도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국가 간 연계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국토가 좁아 경과지 대안이 젂습니다. 그만큼 접속 대기 순서 조정과 기존 설비 활용, 수요 분산 쪽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집니다.

## 첨단산업 입지와 전력망이 어긋나는 구조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는 수도권과 그 인접 지역에 몰립니다. 인력과 연구 인프라, 고객 접근성 때문입니다. 반면 대규모 발전 설비는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에 있습니다. 원자력과 석탄, 해상풍력 모두 입지 조건이 해안을 요구합니다. 전기는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그 통로가 병목입니다.

이 어긋남은 비용으로 환산됩니다. 첫째, 송전 손실입니다. 거리가 멀면 보내는 동안 전기가 줄어듭니다. 둘째, 혼잡 비용입니다. 선로가 포화되면 값싼 발전기를 멈추고 비싼 발전기를 돌려야 해서 전체 발전 비용이 올라갑니다. 셋째, 투자 지연 비용입니다. 공장을 다 지어 놓고 전력 연결을 기다리는 기간만큼 자본이 잠깁니다.

산업 정책 쪽에서는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논의합니다. 전력 여유가 있는 지역에 첨단산업 단지를 유도하는 방안, 대규모 수요처가 전력망 보강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는 방안, 분산형 전원을 수요지 근처에 두는 방안입니다. 소형모듈원자로 논의가 산업단지 전력 공급과 함께 나오는 배경도 여기 있습니다. 어느 방안이든 요금 체계와 입지 규제를 함께 건드려야 해서 합의가 쉽지 않습니다.

##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요

1단계는 절차의 병렬화입니다. 지금은 앞 단계가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직렬 구조입니다. 환경영향평가와 설계, 자재 발주를 겹쳐 진행하면 전체 기간이 줄어듭니다. 한전이 13년 단축을 목표로 내놓은 과제들도 상당 부분 이 방향입니다.

2단계는 수용성 확보 방식의 전환입니다. 보상금 중심의 접근을 지역이 꾸준히 이익을 나누는 구조로 바꾸자는 논의가 이어집니다. 송전선로 주변 지역에 전기요금을 할인하거나 발전 수익의 일부를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설계 단계부터 주민이 경과지 선정에 참여하는 절차도 함께 거론됩니다.

3단계는 기존 설비의 활용도 높이기입니다. 새 선로를 깔지 않고도 송전 용량을 늘리는 기술이 있습니다. 고온 저이완 도체로 교체하거나 날씨에 따라 허용 전류를 동적으로 조정하는 운영 방식입니다. 투자 금액과 기간이 신설보다 훨씬 작아 단기 대책으로 쓰입니다.

4단계는 투자비 회수 구조의 정비입니다. 72조 원대 투자가 집행되려면 요금과 재무 구조에서 그 돈이 돌아올 경로가 있어야 합니다. 요금에 전가할지, 수요처가 분담할지, 재정으로 지원할지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 계획은 문서에 남고 공사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력망 논의는 요금 논의로 수렴합니다.

덧붙이면 공급망도 제약입니다. 변압기와 고압 케이블, HVDC 변환설비는 전 세계가 동시에 전력망을 확충하는 국면에서 납기가 길어졌습니다. 주요 설비의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이 몇 년 단위로 늘어난 품목이 있습니다. 계획을 앞당겨도 자재가 늦게 들어오면 공정이 멈추므로 자재 발주를 설계와 병행해 앞세우는 조정이 필요합니다.

네 단계 가운데 가장 빨리 효과를 볼수 있는 것은 3단계입니다. 신설 선로는 어떻게 해도 수년이 걸리지만 기존 선로의 용량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수개월에서 1~2년 단위로 가능합니다. 다만 이것으로 늘어나는 용량에는 상한이 있어 근본 해법은 되지 못합니다. 단기 대책으로 시간을 벌고 그 기간에 절차와 수용성 문제를 푸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 FAQ
전력이 남는다는 보도와 부족하다는 보도가 같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둘 다 사실일 수 있습니다. 전국 합계로는 설비 예비율이 충분해도 특정 지역에서는 선로가 포화돼 전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력 문제는 총량과 지역, 시간대의 세 축으로 나눠봐야 합니다. 봄과 가을 낮에는 태양광 때문에 남고 겨울 저녁에는 빠듯한 식으로 시간대에 따라서도 갈립니다.
지중화하면 주민 반대가 해결되나요? 반대가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만 비용이 가공선로의 여러 배이고 공사 기간도 길어집니다. 고장이 났을 때 복구 시간도 깁니다. 전 구간 지중화는 요금을 올려 또 다른 반대를 부릅니다. 구간별로 기준을 세워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추가 비용의 분담 주체를 미리 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에너지저장장치로 전력망 문제를 대체할 수 있나요? 시간 이동은 가능하지만 공간 이동은 안 됩니다. 낮에 남는 전기를 저녁에 쓰게 해 주지만 동해안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 주지는 않습니다. 선로 확충과 저장장치는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입니다. 다만 선로 건설이 늦어지는 구간에서는 출력 제한을 줄이는 임시 대책으로 효과가 있습니다.
기업이 전력 연결 일정을 미리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전력 계통 접속 가능 용량과 변전소별 여유 정보를 공개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부지를 고르는 단계에서 이 자료를 먼저 확인하는것이 순서입니다. 대규모 수요처는 접속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부지 계약 전에 사전 협의를 시작하는편이 안전합니다. 전력 조건을 입지 평가 항목에 넣지 않은 투자 결정이 나중에 가장 비싼 비용을 치릅니다.
전력망 투자가 전기요금에 얼마나 반영되나요? 송·변전설비 투자비는 요금의 송전 요금 항목으로 회수되는 구조입니다. 다만 국내 요금 체계에서는 발전 연료비 변동의 영향이 훨씬 커서 전력망 투자분이 요금 변화의 주된 설명 요인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72조 원대 투자가 집행되는 기간 동안에는 이 항목의 비중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어느 소비자 집단이 얼마를 부담할지가 요금 개편 논의의 쟁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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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송전선로 31곳 중 26곳 건설 지연…"AI 첨단산업 걸림돌". https://m.sedaily.com/article/14069658
  2. 한전, 에너지 고속도로 가속…김동철 사장 "송전망 건설기간 13년 벽 허물 것".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0127001116
  3. 한전 "2038년까지 전력망 확충에 72조8000억 투입". https://www.inp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5849
  4. 동해안지역 전력계통 협의회…"2026년 송전선로 준공 목표" (에너지경제연구원). https://keei.re.kr/board.es?act=view&bid=0007&list_no=123126&mid=a10202010000
  5. Renewable energy in South Korea. https://en.wikipedia.org/wiki/Renewable_energy_in_South_Korea